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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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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동의보감의 탄생

이름
관리자
작성일
2014-10-22 11:07:01
조회
1424
오랜 기간 우리나라 백성들은 병에 걸리거나 전쟁으로 다치더라도 제대로 된 의료적 처치를 받지 못했다. 그래서 새로운 의학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고 1596년 임진왜란으로 전 국토의 대부분이 황폐화되고 병자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 한 채 시름하는 백성들의 고통을 보고 선조는 허준에게 기존의학서를 집대성하여 동의보감을 편찬하도록 지시하였다.

이로부터 가난한 백성들이 주변에 흩어져 있는 약재를 이용해 손쉽게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실제로 이 책에는 값비싼 약재 대신에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재를 사용하였고 일반인들도 이해하기 쉽게 한글로 된 향약명을 함께 기재해 놓았다.

허준은 왕실의료와 국가보건정책을 담당하던 내의원에 여러 의원들과 함께 국내 의서인 「의방유취(醫方類聚)」·「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의림촬요(醫林撮要)」를 비롯하여 역대 고금의서 약 180여종에 달하는 방대한 의서를 참고하여 동의보감을 편찬하였다.

당시 최고 수준의 의학지식을 바탕으로 가장 적합한 내용을 가려 뽑았고 일일이 출전근거를 밝혀 두었다. 전서를 내경, 외형, 잡병, 탕액, 침구 5편으로 구성하여 동아시아 의학을 보다 체계적인 학문으로 이끌어 냈다.

하지만 동의보감의 편찬작업이 순탄치만은 않아 정유재란(1597년)이 발발하자 편찬이 보류되기도 했었다.

1608년 선조의 승하로 잠시 유배생활을 하기도 했던 허준은 의서 편찬에 전력을 기울여 집필을 시작한지 14년만인 1610년(광해군 2) 25권 25책으로 완성하였으며, 3년 후인 1613년 내의원에서 완간하였다.

동의보감은 애민의식의 발로이자 예방의학 사상을 실천적으로 구현하였는데 이는 당시 어느 나라 보다 앞선 선진적 의학사상 이었다.

허준은 조선의학을 하나의 독립된 의학이라는 의미에서 이 책의 이름을 「동의보감(東醫寶鑑)」이라 명명하였다. 그는 중국의학과 구분하여 우리 의학을 '동의(東醫)'라 하였는데, 이는 조선에서도 독자적으로 의학을 연구·발전시켜 왔으며 조선의학이 중국과 대등한 수준을 지니고 있음을 공표한 것이다.

출처 : 사이버동의보감박물관, http://donguibogam.or.kr